fall  

 2026.10.7 - 10.31


홍예진 Yejin Hong


글. 이한범


지나감과 함께


지나간 것은 등 뒤에 놓인다. 미래는 다가올 것이며, 몸은 과거를 등지고 미래를 응시하면서 이동한다. 시간의 흐름과 자아의 위치에 대해 대개는 이렇게 믿고 느낀다. 반면 안데스 고원의 아이마라(Aymara) 사람들이 쓰는 언어에서 과거는 몸의 앞에 놓인 시간(nayra pacha)이고, 미래는 몸의 뒤에 놓인 시간(qhipa pacha)이다. 아이마라어 화자의 몸짓은 과거를 말할 때 자신의 등 뒤가 아닌 눈앞을 가리킨다. 이들에게 과거는 보아서 알고 있는 것이고 미래는 보지 못해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¹ 본다는 것이 앎의 문제라면, 시각성은 우리가 세계를 구성하고 배치하는 방식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

지난 몇 해 동안, 아니 어쩌면 더 오래전부터 홍예진은 지나간 것을 눈앞으로 두고서 미술의 문제로 다루어 왔다. 누군가는 다가오는 것을 전망할 때 그는 뒤돌아서서 그가 보았던 것을, 보았으나 사라진 무언가를, 속절없는 멀어져 감을 매만졌다. 가을밤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나뭇가지, 유리창 위로 흐르는 빗방울, 한낮의 그림자, 흐드러졌다가 흩어지는 봄날의 벚꽃 잎들, 스쳐 지나가는 도로변의 화단과 하늘처럼 일상 속 한 장면을 매개로 말이다. 이 장면들은 서사의 요소도 아니고, 유난히 아름답거나 극적이지도 않으며, 모종의 의미를 표현하는 상징도 아니다. 그것은 일방향적인 시간의 휩쓸림을 뚫고 나와 지속하며 끊임없이 ‘보기’ 그 자체에 영향을 주는 매우 개인적인 순간이다. 이것은 회상이나 기억하기와는 조금 다르다. 홍예진은 그 순간을 기념하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그렇지만 언제나 애도하며—그 지속하는 미세한 진동을, 명시적일 수 없지만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본다’는 실천의 대상으로 끌어들이려 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 장면들은 본다는 것의 의미 자체를 숙고하는 과정에서 되돌려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본다는 것은 빛을 수용해 상으로 전환하는 광학 기계의 작용 같은 것이 아니라, 더는 실체 없으나 여전히 잔여하여 세계를 구성하는 데에 영향을 주는 힘들을 동시적으로 배치하는 헤테로크로니적 개념이다. 이를 통해 보게 되고 알게 되며 구성되는 세계가 홍예진이 만드는 픽션-세계다.

그러나 문제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이미지의 몫이다. 홍예진은 ‘보기’의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사진, 드로잉, 회화, 실크스크린 등 여러 매체와 물질을 다루어 나가며 그의 시간 윤리와 미학에 호응하는 시각적 이미지에 대한 실험을 이어왔다. 초기의 실험인 포토그램 연작에서 어떤 사물의 부분들인 조형적 요소들은 그레이스케일 속에서 중첩되어 있는데, 이는 불완전한 부분들의 관계와 연결로 형성되는 전체에 대한 그의 오랜 관심과 지나간 것들의 겹침으로 구성된 실재에 관한 관념을 반영한다.

한편 그는 종종 어떤 장면을 찍은 사진을 화면으로 사용하지만 구체적 형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경우는 없다. 그는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사진의 화면 위를 연필이나 색연필로 칠해 얇은 물질적 막으로 뒤덮어 재현 이미지를 뒤로 물려낸다. 그것은 남은 것과 사라진 것, 있는 것과 있었던 것, 가까운 것과 멀리 흘러간 것의 복잡한 존재론적 관계를 살펴보기 위한 연구 노트 같은 것이다. 드로잉과 회화에서 이 문제는 추상의 강도(intensity)의 문제로 전환된다. 홍예진의 그림에서 사물은 그래픽화되며, 장면의 구성은 연속성을 잃고 여러 개의 프레임으로 분할된다. 그의 물질적 이미지는 점진적으로 불투명해지고 희미해져 가다가 결국 움직임이라는 순수한 운동성을 구현하는 것을 향해 나아간다. 거기에는 망막에 비친 것보다 적은 형상이, 그러나 더 많은 요동이 기입되어 있다. 그것이 이미지의 앎이다.

그의 첫 개인전의 제목인 ⟪Fall⟫은 풍성하고 생생했던 수많은 가시적인 것들이 과거로 흩어지고 사라지는 변곡점을 가리키는 동시에, 한 지점에서 다른 한 지점으로의 이동과 낙하, 지나감 속에서 이루어지는 변형과 변화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홍예진의 이미지는 사라진 것이 실재로부터 분리되어 구획되는 세계에서 여전히 어떤 잔여를 지각하는 사람이 지나감 그 자체에 대해 숙고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 이미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공간성, 즉 우리의 보기와 앎의 체계에 대한 하나의 조작적 시뮬레이션일 수 있다. 다른 보기를 제안한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임의적이라는 사실을 진술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어떻게 다시 배치할지를 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계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 형태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몸이 과거로부터 미래로 이동하며 더는 뒤돌아볼 필요를 가지지 않을 때, 또 그 속도가 가차 없이 빠를 때, 사회가 재생산하는 이미지가 매끄럽게 위생화될 때 더욱 문제적일 수 있다. 홍예진의 이미지가 가정하는 몸은 지나감과 함께하는 몸이다.


¹ Rafael E. Núñez and Eve Sweetser, “With the Future Behind Them: Convergent Evidence From Aymara Language and Gesture in the Crosslinguistic Comparison of Spatial Construals of Time,” Cognitive Science 30, no. 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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