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ation Unknown

2025.05.17—2025.06.14



칸델라브룸(Candelabrum, ‘매단 등’을 의미하는 라틴어로 샹들리에의 어원으로 알려짐) 프로젝트는 APO의 연간 기획이다. 《Destination Unknown》은 지선경, 정하슬린의 회화(적) 설치 작업들을 중심으로 전시 공간을 보다 능동적이고 몰입적인 상황으로 전환시키려는 시도이다. 칸델라브룸은 고정된 하나의 광원이 아닌 여러 방향으로 빛을 퍼뜨리는 구조를 가진다. “Destination Unknown”은 그 다중의 빛에서 비롯되며 이 프로젝트가 특정한 해석이나 메시지로 유도하기 보다는 다양한 방향으로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빛의 장치’ 역할을 한다는 은유와도 맞닿는다. 아울러 두 작가의 각기 다른 감각과 시선이 교차하는 해석의 공간으로, 깊고도 유연한 도착의 방식을 제시한다.


지선경은 공간 안에 관계된 모든 것을 포용한다. 서로가 지닌 조형적, 물리적 특성이 빛으로 반응하며 서로를 연관 짓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관찰, 보이지 않는 힘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작가의 관심에서 비롯된다. 때로는 본인과 관련없어 보이는 것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한다. 이를테면 여왕벌의 움직임 같은 것. 여왕벌은 한 번의 교미 비행으로 평생의 생을 완성한다. 그 찰나의 사건은 무중력 속에서 빛처럼 바람처럼 일어난다. 지선경은 그와 같은 순간 - 짧고 미묘하며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경험 – 의 잔상을 공간에 새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여왕벌 윙윙, 2024> 그리고 이와 연결되는 신작들을 보여준다. ‘단 한 번의 교미 비행’이라는 순간을 감각의 리듬과 시각적 궤적으로 번역하여 조합한 결과물을 만들어 매달아 놓는(hanging) 방식의 설치로 감정의 층위, 표출, 변동의 상태들을 드러내 보인다. 이 상징적 모티프는 인식 불가능한 짧은 순간이 삶 전체를 좌우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드러내며,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경로와 감정의 움직임에 대한 은유로 작용한다.


작가는 ‘무엇을 보여주는가’보다 ‘어떻게 느끼고 지각하게 하는가’에 중점을 둔다. 종이를 재료로 한 컷아웃 드로잉과 콜라주를 경유해 입체와 설치로 확장되는 방식은 지선경의 작업 전반에 등장하는데,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투영되는 빛의 이미지를 응시하여 포착하고 이를 통해 얻어지는 색채와 양감을 마음의 파동이라는 추상적 형태로 시각화 한다. 인간이 편의에 의해 만들어낸 의성어 ‘윙윙, buzz, buzz’, 그 떨림의 감각을 모티프로 드로잉-콜라주-설치 작업으로 확장되는 <윙윙>은 조각의 새로운 기념비성을 암시하며 지선경 특유의 조형 감각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료인 ‘빛’은 그 투명성으로 인해 시각적인 환영과 그를 통한 유희를 만들어낸다. 전시장 전면의 통유리를 통해 자연스러운 환경에 놓인 작품은 밝고 투명한 색채, 대기감, 햇살과 같은 요소를 통해 일종의 바로크적인 환각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관람자의 움직임과 빛의 반사상을 고려하여 전시장을 한층 연극적인 상황으로 구현하고 이같은 공간의 연출 방식은 보는 이에게 감각의 여운을 남기며 각자의 리듬과 느낌으로 생의 단면에 조우하도록 이끈다.


정하슬린의 화면 위에 얹힌 선과 색은 단순한 형상을 넘어서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는 캔버스라는 오래된 매체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고 반복성과 즉흥성이 교차하는 구조적인 화면을 만들어간다. 이때 층을 ‘쌓는’ 감각에만 몰두하지 않고 그것들을 분할하거나 재배치하면서 다양한 공간감을 모색한다. 화면 표면에는 얼룩, 흘러내린 자국, 굳어진 물감의 덩어리들이 뒤엉켜 중첩되면서 입체적인 질감과 다면체적 그리드를 형성하는데, 관람자는 그것을 따라가며 보이지 않는 작업의 과정을 유추하고 감정의 파편을 감각적으로 추적하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정하슬린의 회화에서 이전의 흔적들이 지워지지 않도록 작품에 남기는 ‘레이어’가 중요하고 이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작업의 단계를 심화해간다.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정하슬린의 회화는 단순한 그림을 넘어 평면이 아닌 것, 시간과 시선, 감각이 얽히고 충돌하는 하나의 또 다른 ‘장소’로 인식된다. 정지된 이미지가 아닌 계속해서 변화하고 재구성되는 현장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 표면에 한껏 가까이 다가서면 표면의 질감과 물성은 분명히 회화 그 자체이다.

그의 작업에서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정하슬린이 회화의 전통적 규범, 예컨대 평면성, 재현, 시대적 문법 같은 것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그 형식적 틀 안에 깊이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게 사각의 캔버스는 과거와 현재, 일상과 예술, 자아와 타인을 연결하는 장치이자 무대이고 그 위에서 다양한 패턴, 질감, 촉각, 색채들이 교차하며 고유한 균형을 형성한다. 작가는 회화뿐만 아니라 도자, 일러스트, 요리 등 비회화적이고 비전형적인 요소들을 매끄럽게 융합하여 그의 조형적 실험을 확장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겉에는 뚜렷하게 정의되지 않았던 감정의 파편들 – 분명히 존재했으나 이름 붙여지지 않은 경계의 감정들 – 이 소환된다. 관람자는 중첩된 레이어 사이를 헤매거나 혹은 예상치 못한 경로를 발견하며 작가가 구축한 이미지의 여정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 정하슬린의 회화는 ‘결과’가 아닌, 아직 도래하지 않은, 탐색의 여정이 된다. 


“Destination Unknown”은 지선경, 정하슬린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미완과 유동,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감지한다. 이들은 작업 과정에서 명확한 목표나 형태를 제시하기 보다는 오히려 예측불가능한 흐름과 감각의 축적 속에서 형성되는 ‘어딘가로의 도착’을 열망한다. 이 여정은 고정된 종착지가 아닌 감각과 물질,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며 확장되는 과정 그 자체에 가깝다. 작품과 마주한 이는 공간 안에서 각자의 ‘도착지’를 상상하면서 중첩되는 잔상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Destination Unknown”은 결국 도착의 부재가 아닌, 감각과 상상, 인식이 활발하게 작동하는 미지의 여정이며 두 작가가 회화의 공간, 감정과 시간에 대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도하는 조형적 사유에 가 닿는다.


원채윤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수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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